미래 직업세계의 변화에 있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흐름이 ‘전문직의 위기’입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 ICT 혁명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에서는 단순 반복 노동직, 그러니까 ‘블루칼라(blue callar)’ 계급의 타격이 컸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해 갔으니까요.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화이트칼라(white callar)’ 계급의 타격이 매우 클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단순 사무직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인데요, 이런 흐름에서 의사, 변호사, 회계사, 기자, 교육자 등 전문직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지식과 정보의 카르텔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전문직 일자리에 도대체 어떤 변화가 생겨서 이런 전망이 기정사실로 되고 있는 걸까요?
최근 ‘전문직의 미래(The future of the professions)’라는 책을 내놓은 영국의 리처드 서스킨드, 대니얼 서스킨드 부자(父子)는 전문직 분야별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한 달 전 ㈜미래엔이라는 출판사가 번역본을 출간했습니다. 주로 미국 등 서구의 사례이긴 합니다만, 결국 한국에도 곧 닥칠 미래이므로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미 알려진 다양한 기사들과 함께 각 분야별 변화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의료 분야부터 보겠습니다. IBM의 인공지능(AI) 시스템인 왓슨(Watson)은 암 진단을 돕고 치료 계획을 제시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법을 고안해 낸다고 합니다. 왓슨은 지난해 한국의 의료, 법률 시장에도 진출했죠. 의학 관련 논문은 평균 41초마다 하나씩 출간되는데 왓슨은 이런 엄청난 양의 정보를 신속하게 흡수해 실제 진료에 반영할 수 있다고 하네요. 뉴욕에 있는 한 클리닉은 유방조영사진을 판독하는 알고리즘을 도입해 실제로 유방암이 발병했는데도 잘못 판독하는 오류를 39%나 줄였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 있는 한 약국의 유일한 직원은 로봇인데, 지금까지 200만 건 이상의 처방전을 단 한 건의 실수도 없이 조제했다고 합니다. 미국 약사가 약을 잘못 조제할 확률은 낙관적으로 봐도 1% 정도(1년 약 3700만 건)인데 로봇의 실수는 ‘0건’이라고 하니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됩니다. 미국 의사의 절반가량이 사용하는 앱 이포크라테스는 서로 다른 약품을 같이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전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약품 참조 자료라고 합니다. 예전에 의사들이 이 같은 작업을 하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 2500페이지짜리 ‘의사용 탁상 편람’을 뒤져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네요.
다음으로 법률 분야를 보실까요. 최근 들어 소송을 준비할 때 많은 양의 문서를 검토해 가장 관련 있는 문서를 찾아내는 데는 하급 변호사나 준법률가보다 지능형 검색 시스템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특허 분쟁이나 미국 대법원 판결 소송 결과를 예측하는 것도 경험 많은 변호사보다 빅데이터 기술에 기반을 둔 시스템을 활용하는 추세라네요. 전자판결 기술은 매년 이베이(e-Bay) 사용자 간 발생한 6000만 건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미국 사법 체계를 통틀어 제기된 전체 소송 건수의 세 배를 넘는 규모라고 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발전된 시스템이나 기술이 전통적 변호사의 역할을 대부분 대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세무와 회계감사 분야에서도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2014년 미국에서는 세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유료 시스템 또는 세무 당국이 제공하는 무료 소프트웨어 등 세무신고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온라인으로 세무신고를 한 사람이 48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영국의 재무부 장관은 2015년 3월 ‘세무신고의 종말’과 2016년 ‘디지털 세무회계’의 시작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대기업의 회계감사를 지배하는 회계법인은 ‘빅4’, 즉 딜로이트, KPMG, EY, PwC입니다. 이들 회사는 현재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공산이 큽니다.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으로 현재 통용되고 있는 표본 감사 방식이 조만간 ‘100% 감사’ 방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분기별, 반기별, 연도별 감사가 아닌 상시감사의 대변혁이 오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생들의 선호 직종으로 꼽히는 경영컨설팅 분야도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맞을 전망입니다. 최근 컨설팅 서비스를 크라우드 소싱하는 플랫폼이 등장했습니다. 오픈 IDEO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 IDEO가 만든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온라인에 게시되면 오픈 IDEO 가입자는 누구나 플랫폼에 로그인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위키스트래트는 정치, 군사, 정부, 학계 등의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 1000여 명이 속해 있는 온라인 네트워크입니다. 고객이 이들 전문가 집단 중 대상을 선정해 질문을 던지면 선택된 전문가 집단은 온라인으로 위키스트래트 플랫폼에 모여 문제를 함께 해결합니다. 인터넷과 크라우드 소싱, 집단지성의 구현으로 이제 더 이상 컨설팅이 몇몇 회사나 집단에 독점되는 현상이 옅어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언론 분야의 변화도 급격합니다. 뉴스를 얻는 주 원천이 인터넷이라고 답한 비율이 2013년에는 50%까지 올라갔습니다. 영국에서는 지난 7년간 뉴스와 잡지를 온라인으로 읽는 사람의 비율이 20%에서 55%로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하네요. 온라인 뉴스의 중심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있습니다. 이런 소셜 미디어 사용자 중 절반은 플랫폼을 이용해 뉴스, 사진, 동영상을 공유합니다. 플랫폼 접근 도구는 컴퓨터보다 이동통신기기(휴대폰)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전문영역으로 취급돼 온 기사 쓰기는 이제 프리랜서, 행동가, 보통 사람 등 모두의 행위가 됐습니다. 2014년 AP통신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컴퓨터로 작성한 기업 수익 보고서는 수백 건에 이르는데, 이는 과거에 수작업으로 작성한 보고서의 수보다 15배나 많은 양이라고 합니다.
한국 청소년들의 선호 직장 1~2위에 꼽히는 교사 직업도 큰 변화를 겪을 조짐입니다. 로켓십 에듀케이션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율형 공립학교 아홉 곳의 연합체인데, 이곳 학생들은 등교시간 중 4분의 3은 교실에서 교사와 함께 보내고, 나머지 4분의 1은 ‘학습실’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학습실에 있는 소프트웨어는 개인별 성적 데이터를 토대로 학생 각각의 요구와 능력에 맞춰 수업 내용, 방법, 속도를 조절한다고 하네요. 특별히 관심을 쏟아야 할 학생이 있으면 시스템이 교사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고 합니다. 개인 맞춤형 학습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학교들은 뉴욕, 디트로이트, LA 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칸 아카데미는 교육용 동영상 5500개(조회 수 4억5000만 회), 연습문제 10만 개(응시횟수 20억 회)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다양한 주제에 걸쳐 풍부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강연한 내용을 온라인에 모아놓은 TED는 2012년 하반기에 조회 수 10억 회를 달성했습니다. 스탠퍼드대학 교수 두 명이 만든 코세라나 하버드대학과 MIT가 만든 EdX 등은 수백 개 교육기관에 있는 세계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만든 강의 수천 개를 수백만 명의 학생에게 전달하는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지금까지 독점적 권한을 누려온 교사, 가정교사, 강사 등이 이런 흐름으로부터 도전받고 있습니다. ‘무대에 선 현자’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이를 대신해 전문성의 원천을 찾아가도록 학생을 돕는 ‘옆에 선 안내자’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우리는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문직 직업세계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전문직은 선호도가 굉장히 높은 일자리 분야입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의사, 변호사, 회계사, 경영컨설턴트, 기자, 교사 등 전문직 일자리를 갖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최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최고의 선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선, 또는 차선의 선택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니 수능에라도 매달려야 안심이 된다는 우리의 청소년들을 위해 기성 세대는 도대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걸까요?
[출처: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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